황혼, 석양을 아릅답게 표현한 글귀

2월 14, 2018

* 출처 : 2017 올해의 문제소설 중 백수린 작가의 ‘고요한 사건’

아름다운 문체와 문구를 발견하고 세 번정도 글귀를 곱씹어 보았다. 작가의 섬세함에 반해버렸다.

‘사라져가는 태양의 빛줄기가 쇠락한 골목과 남루한 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검버섯 핀 노인의 얼굴을 쓰다듬듯이. 그러면 동네는 쪽잠을 청하는 고단한 노인처럼 주름이 깊게 팬 눈꺼풀을 손길에 따라 천천히 감았다. 해가 지고 나면 대기에 남아 있던 온기도 노인의 마지막 숨결처럼 느리게 흩어져갔다. 몸에 한기가 깃들어 더 이상 앉아 있기가 힘들어지면 그제야 나는 쭈그렸던 다리를 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라한 골목이 어째서 해가 지기 직전의 그 잠시 동안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지는지 그때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그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는 동안 내 안에 깃드는 적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고독이 달콤하도 또 괴로워 울고 싶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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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가 됐다.

11월 29, 2017

2015년 10월 결혼. 예정된 수순처럼 주변에서 임신 소식이 끊임 없어, 조바심이 생기기 시작한 2017년 8월.

감사하게도 책임자(과장)이 됐고, 일이나 열심히 하자 생각으로 운동도 다니던 찰나, 고맙게도 아기가 찾아와주었다. 말씀은 안하셨지만 친정&시댁에서 기다리던 소식이었는지 너무나 반가워해주셨다. 친정이나 시댁이나 집안의 첫 아기였다.

그러나……. 2017년 임산부에게도 시대적으로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존재한다.

단축근무는 눈치보여서 쓰지도 못하고. 동료들에게 피해갈까봐. 일찍 가는것도 눈치보여서 가라그럴때 겨우 일어나게 된다.(몸이 너무 아픈 17주부터는 일찍 가고는 있다.)

몸이 안좋지만, 원활한 인력수급을 위해 정기인사 때 휴직에 들어가게 되는데, 나름 팀원들에게 피해주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개발이란 개발은 다하고 있다.

뭐가 부족했던걸까. 한달전부터 12월말까지 근무하겠노라 상급자에게 얘기해놓았는데. 대외 회선 뚫어 개발하는 업무를 오늘 아침에!!! 12월 말까지 해달라는 지시를 받았다.

개발일정이 모두 차서 어렵겠노라 말씀드렸더니, “나는 팀장님께 못하겠다고 얘기 못해. 네가 아니면 누가 개발하니? 네 업무인데?”

해당 업무는 나와 상급자 둘다 사무분장 되어있는 업무이다. 물론 나도 깔끔하게 모든 업무를 다 해놓고 가고 싶지만, 육아휴직 들어간다니 가기 전에 해달라고 개발의뢰 오는 건들이 한두개가 아니다.

일정이나 업무순위조정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화를 내셔서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하루종일 삐지셔서 말도 안하셨다. 여러 상사 분을 만났지만, 이번이 제일 어렵다. 상급자가 급작스럽게 병가 가셨을 때, 난 몸이 우선이라고 일단 들어가시라고 했다. 큰 개발 건이 있는 건 알았지만 체계 잡아달라고 보채지 않았다.

경험자라 생각했던 분들이 가끔 더 놀라움을 안겨주신다. 본인은 막달동안 회사에 다니셨다며…

그동안 너무 좋았던 상급자들을 만났던 나의 운에 감사드린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오늘 받은 충격을 기억해두고자 한다.

장소의 의미 : 시노하라

6월 27, 2015

한여름의 판타지아 – 감독 장건재

1. 보편적 판타지 : 마케팅 소구점은 여행에서 만난 낯선 남녀의 로맨스이다. 서양의 비포시리즈(비포선라이즈, 비포선셋)와 비견된다. 홀로 떠나는 여행에서의 설레임은 모든 싱글 남녀의 판타지가 아니던가.
2. 장소의 의미 : ‘시노하라’를 보며, 내 고향 태백을 떠올렸다. 한때 번성했던 마을은 텅텅 비었다.
씬은 가지런히 놓인 장작더미를 3초간. 요네자와 할머니가 시노하라를 ‘부서진 곳’이라 하는 이야기 장면. 잘리워 지기위해 꺽인 나무 씬을 3초간 보여준다.
임업이 생업이었던 그 마을의 이야기를 압축하여 영화적으로 표현한, 아름다운 미장센이다.
부서진 마을에서 앞으로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주인공도 인상깊다. 결국 우리는 그러하다. 부서져도 다시 마주한다.
3. 장면의 운율 : 작품은 시였다. 수미상관(1부와 2부의 불꽃), 대조(흑백과 컬러), 반복적 배치(골목, 카페, 니시하라), 변조(니시하라에서만 사신 요네자와 할머니가 2부에서는 니시하라에 돌아오지 못하고 병원에서 돌아가신 유스케 할머니 등 등장인물은 대부분 1인 2역을 수행)
작품에서는 운율이 느껴진다. 심상은 다분히 일본적인데, 어조는 한국적이다. 시를 장면으로 읊조린, 오랜만에 오래 담아두고 싶은 아름다운 작품이다.
4. 소망 : 모두를 떠나보냈던 요네자와 할머니도 떠나셨단다. 니시하라에서 평생을 사신 할머니는 아침,저녁으로 불공을 드렸는데, 그 분의 기도도 이름답다. “모두가 건강하게,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어”

다른 카드 있으세요?

6월 12, 2014

급여계좌 외에 용돈계좌를 별도로 만들어, 이를 연결한 용돈카드(체크카드)를 쓰고 있다. 종종 용돈을 초과해서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그 때마다 계산대 점원의 반응이 흥미롭다.

1) “잔액 없으신데요” : 통상적이다. 카드단말기에서 출력되는 메시지 ‘잔액부족’을 그대로 이야기한다.

2) “다른 카드 없으세요?” : 가장 서비스 마인드가 투철할 것 같은 백화점 매장이나 패밀리레스토랑에서도 1)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우연히 찾게된 브런치 카페에서 점원은 잔액부족 대신 다른 카드가 있는지 먼저 물었다.

2)의 화법. 고객은 그 차이를 알아본다.

안정을 원한다.

6월 3, 2014

불안 – 알랭드 보통

 

 1) 사랑의 결핍 : 사랑은 세상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존중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관심 -> 부(축적) -> 사랑이라는 메카니즘을 지닌다. 관심에서 비롯된, 사회적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게 된다. (사회적 약자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태도가 그들에게 “의미”가 된다.)

상대방의 태도가 나의 의미를 결정지었기 때문에 초라해진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특히나 “너는 이런 것도 이해 못 하는구나!”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상대방에 대해 본인 자신만 이해받고자함이다.

2) 속물근성 : “속물은 독립적인 판단을 할 능력이 없는데다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갈망한다.” 자신만의 기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나만의 기준이 없어, 속물근성 즉 소위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다보니 소중한 것을 잃은 경험이 있다. 또한 ‘남들이 ~ 카더라’에 휘둘린 타인의 속물근성을 관찰하는 것은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이로써 나는 어리석게도 불안의 정점에 서있었던 것이다. 

Going to a town

6월 3, 2014

Tom at the farm – Xavier Dolan-Tadros
Going to a town – Rufus Wainwright

 

1) ‘Going to a town’이라는 음악을 위해 존재하는 영화임이 분명하다. 탁월한 선택이다.

2) 인간 본성이 뒤틀린 인물 속 ‘탐’은 성적 소수자이지만, 오히려 그 이름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평범함이나 보편성을 갖는다. 감독은 사실, 덤덤한 시선으로 동성애자인 주인공을 조명함으로써 망가져버린 인간본성(프랑시스와 그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가진 폭력, 거짓과 은폐. 우리는 그것에 스톡홀롬 신드롬을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3)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탐이 무의식적으로 농장의 집으로 -문 앞 현관에- 들어서려다가, 멈칫하면서 뒷걸음질 치는 장면이다. 유일하게 그가 비정상적인 상황을 인지하며, 드디어 행동으로 이끌어낸 장면이다. (일상생활에서 비정상적/ 옳지않음을 경험하고도 물러나거나 눈 감아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의 뒷모습, 특히 어깨 언저리에 잡힌 앵글의 망설임이 곧, 나의 망설임처럼 느껴졌다.

4) “실재한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던 탐의 이유이다. 농장으로 대변되는 거짓이 만들어낸 세상은 마치 새로움이나 생명력(잉태한 송아지)으로 가득 차있는 것 같다. 우리는 실재와 허구를 극명하게 구별할 수 있을까.

5) 미국국기의 잠바를 입은 프랑시스(폭력성과 이중적인 태도-자국민(어머니)에 대한 애착-를 지닌 인물)와 Going to a town의 “I’m so tired of America” 가사가 묘하게 매칭되는 위트 있는 영화

다음을 기약할 줄 알아야 한다.

5월 16, 2014

미금역으로 와준 님으로 인해 한껏 고양된 기분으로 막걸이와 파전을 먹으러 가게에 들어섰다. 막 한모금 삼켰는데, 파인애플을 든 젊은 청년이 다가왔다. 돈은 안 받을테니 한 번만 맛보라고 하였다. 맛만 보라며.

맛만 보고 사지 않으면, 괜시리 판매자는 서운한 마음을, 소비자는 미안한 마음이 들테니 정중히 거절하며 괜찮다고 했다. (마트 시식코너도 마찬가지이다. 괜히 맛본 것이 미안해져서 구매하는 경우가 있어 아예 시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파인애플 장수는 완강했다. 자리를 뜨지 않고 우리 테이블에 계속하여 머무르고 있었다. 이야기 나눌 시간도 부족하였던 터, 그리고 기분이 좋은 상태.
“진짜 맛만 보면 되죠?” 이러면서 냉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분도 나도 기분이 상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그 분은 곧 파인애플이 얼마인지 물어봐달라고 한다. 역시 맛만 보라는 그 말은 판매단계에서의 1단계였던 모양이다. 파인애플 장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파인애플이 얼마인지만 물어봐 달라고 했다.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구매의사가 없는 고객에게 점점 감정호소를 하기 시작했다. 개시도 못 했다며, 오천원이니 하나 사달라고 한다.
다음에 사겠다고 하였다. 나는 정말 다음에 살 의사가 있었다. 그러나 파인애플 장수는 “다음은 없다.”고 말했다. 물론 그날의 매출이 중요하겠지만, 뜨내기 고객이 대상이 아니라면 다음을 기약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고객이 완강하다면 다음을 기약할 줄 알아야 한다.
구매 의사가 없는 고객에게 감정적 호소로 이뤄낸 판매에 지속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바로 그 자리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하지 말자. 다음을 기약할 줄 아는, 기다림의 미학을 가진 사람이 되자.

통(通)

5월 11, 2014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 – 작가 : 데이빗 그레이그, 연출 : 이상우

제목만큼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연극이다. 현대인의 소통의 부재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주제는 무거웠지만,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를 적절히 오가는 그의 연극은 시종일관 나를 유쾌하게 했다.
우리는 끊임 없이 상대와 소통하길 원하지만. 현대인들은 어쩌면 서로 대화하는 법을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 나또한 그렇고. 대화가 아닌 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소통하는 비비안과 베르나르를 보며, 언어가 아닌 마음이 통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상대방의 입이 아닌 마음을 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면 귀 귀울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한다. 말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은 세상. 욕망. 알아달라는 욕망 같은 것. 나를 보아달라고 하는 외침. 작가는 욕망이란 것은 비로소 모든 것을 가졌을 때 사라진다고 했다. 법정 스님은 욕망에 대해 무소유라고 한다. 우리 마음은 이미 식민지가 되어버린 걸까. 아메리카로 대변되는 거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마음 속 깊이 파고든 것일까. 작가는 우리 마음은 이미 아메리카의 식민지라고 했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영상미. 런던과 파리, 오슬로를 오고가는 작가의 무한 상상력. 주인공과 주인공을 잇는 이야기의 구성. 너무도 다른 캐릭터들로 인간의 양면성까지 표현한 작가와 연출가에게 그저 감탄 또 감탄한 연극이다.
마음이 통했으면 한다. 말할 것이다. “그래, 당신. 우리 얘기 하자”고 말이다.

‘왜’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시오?

5월 11, 2014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키잔차키스

 

“애매한 것도, 비물질적 대상도 아니고 이름과 형태를 알았으니 싸움이 훨씬 쉬워진 셈”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처럼 행동하는 삶에 뛰어들 이유를 찾았다. 비록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수많은 초콜릿과 브라우니, 라떼 등등) .

나의 결심은 조르바로 인해 생겼다. 무언가 고민스럽고 쉽사리 결정내리지 못할 때, 조르바가 말했다.

“‘왜’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시오?” 

그 한 마디에 계산 없이 오로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우리는 삶에서 꽤나 복잡하고 그럴 듯한 답변을 찾길 원한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온갖 논리와 궤변들로 가득 차있다. 그처럼, 좀더 단순한 답을 찾아보자. 

나쁜 짓들이 때로는 자유의지를 실현하기 위함인 것을… 때문에 비난하거나 힐난하기가 어렵다. 그의 자유행동이나 의지에 영향 받지 말며, 사물을 직시해야 한다. 본질을 봐야 하지 않은가! 수많은 ‘왜’라는 질문 앞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라는 명령

3월 8, 2014

1.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며 열심히 벤처기업을 양산해내던 사회가 이제는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라”고 한다. 최근 경영진은 또다른 열정 슬로건을 찾은 듯 하다.
2. 몇 년전 읽었던 책이 다시 생각났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라는 책이다. 열정으로 대두되는 노동의 미학화에 관해 역설하고 있다.
3. 어느덧 열정은 제도화되었고 이른바 유사도덕으로까지의 성공을 거두었단다. 자기계발은 나 자신이 노동자임을 잊게 하는 블라인드이면서, 능동적인 노동을 부추기는 교묘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국가와 기업이 아닌 개인이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자기계발)는 발상은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훌륭한 전략이라고 한다.
4. 내가 좋아하서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니, 내가 더 감내해야 하는 것이 맞단다. 그러므로 어느덧 노동자는 야근과 주말출근의 동반자여, 친구가 된다.
5. 하지만 고무적인 것은 노동자들이 똑똑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 유인경’와 같이 근래 출판되는 책을 보면, 열정만이 답이 아니라 인생을 살라고 이야기한다.
6. 열정은 개인의 삶을 희생하라 강요하지만, 내 딸에게는 야근이나 사표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준다.
7. 시간이 지나, 노동자가 될 우리의 딸과 아들에게 열정보다는 인생을 선물해주고 싶은 작은 소망이 생겼다.

* 문득 주말에 자기계발하다가 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