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댄스댄스댄스’

‘경영과 정보기술’의 발표 준비를 마치면서, 나 자신에게 상을 내리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무라카미작.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나쓰메 소세키이다. 그의 작품은 잔잔하면서도 인물에 대한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다. 무라카미 작품 또한 좋아하는데, 그의 작품은 뭔가 둔탁한 것으로 얻어 맞은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사실 이 책은 17일에 읽었으나 오랫동안 리뷰를 미뤄왔다. 뭐라고 이 책에 대해 남겨야 할지 많은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사실 책의 내용은 난해하기 그지 없다. 미스테리물이나 혹은 공상소설 쯤? )그러다, 어제 전화온 친구의 이야기를 통해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춤을 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텝이 엉켜버린다. 젊은이들이여 계속해서 춤을 춰라! 자신의 음악에 몸을 맡겨라!]

친구들과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결론이 날 것 같지 않은 그런 토론을 몇 시간이나 했었다. “우리네 인생은 결과론적이다, 아니다 그 과정적인 것이 중요한 것이다.” 홍대 4년제 사범대를 나오고 그 해 바로 임용고시에 합격한 이가 이 대화의 주제를 던져준 장본인이었다. 요즘 같은 구직난에 그야말로 평탄대로-
나와 한 친구는 말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지금, 그 사람 참 잘 됐다, 잘 된 인생을 산 것이다라고 말이다. 한 친구는 말했다. 어떻게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알 수 있으냐, 그러면 우리 인생이 너무 불쌍하지 않는냐. 아둥바둥 살려고 애쓰는 우리 모습이 처량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나는 어리석게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라는 것은 모두 간판이니깐. 내 얼굴에 그럴 듯한 간판만 붙이면 그 과정이야 아무렴 어떠리.
어차피 과정이야 만들어내는 것이고 결국, 사람들은 결과만 본다. 과정도 보지만 언제나 결과가 중요하다. 나는 결국, 과정론자인가 결과론자인가.

오늘날의 젊은 이들은 방황하고 또 상실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작품을 쓸 시대와는 확연히 다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변화와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하고 있다.
방향성은 나중의 문제이고 우선, 평형성을 회복하는 일이 먼저다. 마음의 평형을 찾아라. 사실 우리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모두가 최면에 걸린 듯, 한 곳을 향해 간다. 결정하기 전에 먼저 잘 살펴봐야 한다.
일상에 파뭍혀 어느 것이 상처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면 대수로운 상처는 아니다.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누군가는 앞으로 가려는 나의 길이 상처투성이일 것이라 예견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상처를 끌어안고 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그 상처를 꺼내들고 옛 시절을 추억한다. 젊은이들여. 상처를 두려워하지 말고 당신 자신의 길을 가라! 결국, 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게 그런 말을 하고 싶어했던 것이다.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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