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됐어(됐어)이젠 됐어(됐어)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의 도입부

몇 일전 다른 블로그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앨범을 샀다는 블로거님의 소식을 전해들었다. 오랜만에 추억에 잠겨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들었다. 그렇다. 우린 그 노래에 열광했었다.

그 땐, 조그만 교실 속에 있었고. 지금은 조금 넓은 강의실 안에 있다. 뭐 1년이 채 되지 않아 이 곳도 떠날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역시 室 내에 있을 뿐이다. 학교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꼭 대외활동이라던지, 어학연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大人으로 만들었는가의 문제이다.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좀더 성숙시켰느냔 말이다.

지금 홍익대 안에서는 총학생회장의 이야기로 떠들석하다. 반값등록금 요구시위의 일환으로 여자로써는 힘든, 삭발을 한 잔다르크.

일부 네티즌이 반값등록금 시위를 한 이들에게 말했다. “비싼 등록금 낼 형편도 못되면서 왜 대학에 갔니.”

인간의 배움의 욕구, 혹은 부모의 기대, 사회적 요구에 의해 대학으로 오게된 우리들에게 현실은 너무 가혹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 학교에 다니면서 쓸 용돈 혹은 자취비 등등.

반값은 아니더라도, 대학 등록금 때문에 삶을 저버리는 일은 없어야하지 않겠는가.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 교실 이데아 중
(우리는 사실 대단한 포장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포장지 마저 녹록지 않았다.)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날을 헤멜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 교실 이데아 중

그래서 그랬나보다. 남이 바꾸길 바라기보다 그들 자신 스스로가 바꾸기 위해 나선 것이다. 나는 그들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고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나’ 외에 다른 것에 무심한 여러 대학생들을 떠올렸다. 물론 나도 그 학생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대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나 등록금의 문제가 일부 대학생들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잖은가. 그래서 5월 1일 등록금 문제로 모이는 그 곳에 가보려고 한다. 나중에 우리 후배들. 등록금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그리고. 이 세상이 힘들어 먼저 간 그 친구에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개의 답글 to “왜 바꾸진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1. kkongchi Says:

    저도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등록금 문제로 싸우고 있는 많은 학생분들에게도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싶습니다…

    • 김보름 Says:

      이명박 대통령께서는 대학입시가 대대적으로 바뀌어야한다고 주장하시는데, 등록금에 대한 언급이 없어는 것을 보니… 교육이 가진 자들의, 소위 돈이 돈을 낳는 양산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