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5월, 2009

Adobe Premiere에서 MOV, AVI 인식 문제

5월 28, 2009

동영상 편집프로그램을 Adobe Premiere을 사용하시나요?
대부분 사용하시는 프로그램들이 프리미어와 베가스로 알고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프리미어를 사용하는데요.

프리미어에서는 일반 디카가 저장하는 확장자인 MOV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확장자를 바꿔주는 작업을 하셔야 하는데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코덱설치, 변환프로그램 설치 등
xvid 코덱, show, 엔젤인코더 등등 기타 네이버 자료실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있습니다. 동영상 편집을 처음하시는 저와 같은 초보자 분들께 권합니다.
이런 프로그램 여러 가지 보다는 QuickTime player 설치 한 번이 훨씬 편합니다!

만약 MOV를 AVI로 변환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동영상 파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오디오 파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와 같이.)

다른 것들은 프로그램을 깔고 설치하고, 변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QuickTime player는 네이버 자료실에서 무료로 다운 받은 뒤,
프리미어 프로그램을 닫고, 다시 창을 띄우면.
MOV의 파일도 인식이 된단 말입니다!

다른 여러 가지 파일들 받으시고, 번거로우실 필요가 없습니다.
QuickTime player 설치 한 번이면 O.K이니까요.

아. 이 파일 변환하느라고 3시간이 흘렀습니다.
여러분은 3시간을 버신 겁니다. 건승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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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ist VS Generalist

5월 28, 2009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읽게 된 책이 있다.

“Everything is Miscellaneous”
-The power of the new Digital Disorder

2007. David Weinberger

보다 전문화된 사회에서 자신만의 영역에서 Specialist가 되는 길이 완전경쟁시장의 구직시장에서 보다 자신을 어필할 수 있다고 한다. Specialist가 되어야 할까. 아니면 모든 분야를 아우를 수 있는 Generalist가 되어야 할까.

이 책은 모든 것이 Miscellaneous될 것이니 Generalist가 되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학문 영역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가령 ‘경영과 정보기술’이라는 과목이 Miscellaneous의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그가 주장하는 바는 크게 3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비록 이 책은 2007년도에 출판이 되었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세 가지 모두가 2009년 현재까지도 해당되는 바여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 Information is most valuable when it is thrown into a big digital “pile” to be filtered and organized by users themselves
– google과 같은 검색 서비스들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Instead of relying on experts groups of passionate users are inventing their own ways of discovering what they know and won
– 이러한 예로 wikipedia와 같은 user들로 인한 종합지식사전서비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3. Smart companies do not treat information as an asset to be guarded, but let it bose to be “mashed up” gaining maket awareness and customer layalty
– 이와 같은 예로 현재 google의 안드로이드와 각종 오픈 소스들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모두 뒤엉킨 형태가 된다. Specialist가 되는 것은 선택이겠지만, Generalist가 되는 것은 필수인 것 같다. 우리는 방대한 영역에 대해 얼마쯤은 알아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설령 내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야에서도 말이다. 모든 것은 Miscellaneous되기 때문이다.

One of the Google earth/maps cool project!

5월 27, 2009

Digital tribute to fallen troops

Memorial Day를 맞아 Google Earth와 Google Maps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죽은 5,7000이 넘는 미국인들과 연합군들을 추모하는 project를 가동했다.

각 사람들의 개인사와 사진, 어떻게 그들이 죽었는지, memorial wabsite에 방문하여 친구들과 가족들의 코멘트도 볼 수 있다. 그들이 죽었던 장소와 그들이 있었던 장소도 표시해준다.

유족들에게는 정말로 고마운 선물이 아닌가 싶다. 또 이러한 project를 구축해 놓음으로 인해서 전쟁으로 인하여 얼마나 크나큰 비극이 일어났는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좋은 가르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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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rity Twitter Overkill

5월 27, 2009

Twitter의 장점 중의 하나는 유명인사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Follow 클릭 하나면, 실시간으로 그들과 이야기할 수도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러나 www.current.com의 supernew는 Celebrity의 Twitter 사용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한다. 무분별하게 자신의 idol을 따라하는 행위로 인해, 자칫하면 madness of crowds가 될 수도 있다. 또한 twitter는 Celebrity의 권력을 양산하는 Tool이 될지도 모른다. (오바마의 예)
Celebrity의 twitter의 사용은 twitter로서는 반길 만한 일이다. 실제로 오프라 윈프리가 twitter를 가입한 이유, twitter사용자가 급증한 예가 바로 그러할 것이다.

twitter가 쌍방향적인 communication보다는 일방적인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아래 동영상은 이와 같은 사실을 재미있게 만든 비디오이다.

www.current.com
이 곳에 가면 더 많은 재밌는 내용을 애니메이션으로 제공해준다.

몇몇 Celebrity는 명성을 쌓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fan들과 소통하기 위해 twitter를 하는 것도 같다. 다음은 애쉬튼 커쳐가 twittering을 그만두겠다고 협박한 내용이다. Kutcher threatens to stop Twittering

노무현 대통령의 사법시험 합격수기

5월 25, 2009

홍익대학교 캠퍼스 안에도 분향소가 마련되었습니다. ▶◀

홍익대학교 분향소

친구가 알려줬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법시험 합격수기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등학교만 졸업하고도 어떻게 그 힘들다는 사법고시에 합격했냐고 묻곤 한다. 젊은 사람들 가운데는 좀더 구체적으로 ‘공부를 어떤 식으로 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1975년 내가 제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당시는 물론이고, 20년이 거의 다된 지금까지도 내게 묻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칭찬도 반인 것 같고 호기심도 반인 것 같다.

그런데 그때마다 제대로 대답을 해주지 못했다. 워낙 오래 전의 일이고 또한 조금은 쑥스럽기도 해서였다. 그러나 혼자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고 흐뭇해진다. 남들보다 많이 힘든 상황에서 공부를 했고 시험에 합격해서 그런지, 내 인생을 되돌아볼 때 사법 고시에 합격했던 그 순간만큼 행복했고 성취감을 느꼈던 적은 없는 것 같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수험 잡지인 [고시계] 75년 7월호에 ‘과정도 하나의 직업이었다’라는 제목으로 고시 합격기를 쓴 적이 있다. 이번에 책을 내기 위해 [고시계] 75년 7월호를 어렵게 구해 오랜 만에 내 합격기를 읽어보았다.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참으로 절망도 깊었고 일도 많았던 고시 공부 시절…..

어릴 때 쓴 것이라 여기저기 어색한 데도 많고 유치하게 느껴지는데도 있지만, 그 당시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하고 싶어 손보지 않고 그대로 싣는다. 그 동안 나의 고시 공부 시절에 대해 물어 보았던 분들께 만족스런 대답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 * *

1. 머리에

지나간 일은 언제나 아름답게만 보인다지요? 산꼭대기에서는 힘겹게 올라온 가파른 산길마저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듯이 말입니다. 또 승자의 과거는 그것이 자서전이든 타인의 작품이든 가끔 신화적으로 수식되어 있음을 봅니다.

사법시험의 합격, 이것이 긴 여정에서 하나의 중간 목적지에 불과하지만 하나의 성취와 조그마한 승리로 평가될 수도 있기에, 막상 합격기라는 것을 쓰려 하니 자칫 어떤 승리감에 도취되거나 과거를 돌아보는 낭만적인 기분에 도취되어 힘겹고 괴로웠던 긴 수험 과정의 체험을 스스로 미화시켜 얘기하는 잘못을 범하게 될까 여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졸 합격자라는 다소 특이한 제 입장이 독학도들에게 어떤 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 둔한 솜씨나마 될 수 있는 한 사실대로 기억을 더듬고 그때의 생생한 감정들을 살려서 몇 자 쓰고자 합니다.

2. 동기 – 꿈을 키우던 시절

나는 경남 진영이라는 읍에서 약 10리나 떨어진 산골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위로는 형님이 두 분으로, 큰형님은 부산 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고등고시를 준비하였으나, 본래 가난한 살림에 벅찬 대학 공부 때문에 가세는 더욱 기울어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쯤 끝내 응시도 해보지 못한 채 그만두고 말았다.

당시 나는 형님을 따라 마을 뒤에 있는 봉화사라는 절에 가서 그곳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형님 친구들의 법이론이나 시국에 대한 토론을 자주 듣곤 했으며, 또 형님은 자신의 좌절에서 오는 울적한 심정을 털어놓기를 좋아했던 모양으로 가끔 상기된 어조로 나에게 여러 가지 얘기를 들려주곤 했다.

물론 나는 그때의 얘기들이 너무 어려워서 잘 이해되지 않는 것이 많았으나, 그들의 엄숙한 표정과 격한 어조의 토론은 만만한 젊음의 패기와 이상을, 그리고 격렬한 논쟁의 뒤에 주고받는 소탈한 웃음은 사나이들의 인간미와 호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느꼈고, 이것들이 고시 학도들의 속성이요 또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으로까지 생각했다. 결국 이런 분위기는 나에게 고시를 해보겠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살림은 더욱 기울어 작은형님은 학업을 중단했다. 부모님의 노동 능력은 차츰 줄어갔고, 마침내 최후의 명줄로 남아 있던 조그만 과수원마저 빚에 쪼들려 처분해야 했다.

나는 3학년이 되면서 일찌감치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5급 공무원 시험을 거쳐 독학으로 고등고시에까지 밀고 나가 보겠다는 결심으로 옛날 형님께서 보시던 누렇게 바랜 [법제 대의]와 [헌법의 기초 이론(유진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해 10월에는 일자리를 찾아 나갔던 형님께서 돌아와 내가 하는 꼴을 보고 크게 나무라시며 진학을 권하셨다. 나도 가정 사정을 들어 고집을 부려 보긴 했으나 끝내 강권에 못 이겨 부산 상고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예순이 넘으신 부모님들의 생활은 아무런 토지의 근거도 없이 자신들의 노동으로 해결하시도록 내버려 둔 채 작은형님이 어렵고 힘든 직장을 전전하며 벌은 돈으로 내 숙식비를 부담해야 했으니, 대학 진학은 아예 엄두도 내어 보지도 못하고 취직반에 들어갔다.

그래도 역시 막연하게나마 길러 오던 고시에의 꿈을 버릴 수는 없었던지 3학년 말 농협에 취직시험을 치른 후 발표도 나기 전에 65년도 11월호 [고시계]를 한 권 샀다. 고시의 냄새를 알기 위하여…..

3. 출범, 그리고 표류

농협에의 낙방에 이어 개인 회사에 취직했으나 생각보다 급료가 박했고 근무 시간이 많았던 것은 고시로 향한 출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야산 돌밭을 개간하여 심은 고구마와 영세민 취로 사업장에서 내주는 밀가루로 연명하시는 부모님들의 실망을 모른 체하고 직장을 그만두었다. 한 달 반의 급료 6천원으로 몇 권의 책을 사고 마을 건너편 산기슭에 토담집을 손수 지어 ‘마옥당(磨玉堂)’이라 이름 붙인 후, ‘사법 및 행 정 요원 예비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당시에는 학력 제한이 있었다). 책값을 벌겠다고 울산 한국비료 공장 건설 공사장에 막노동을 하러 갔다가 이빨이 3개나 부러지고 턱이 찢어지는 불운을 겪으면서도, 용케 11월에는 제7회 예시에 합격하였다.

4개월 정도의 준비로 예시에 합격하는 행운과 함께 이제까지의 나의 처절한 투쟁은 막을 내렸다. 나의 예시 합격에 자극받아 큰형님은 67년에, 작은형님은 68년에 각각 5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67년에는 법률 서적을 살 형편이 못되어 예비 시험 과목을 새로 공부하고 있다가 68년에는 군에 입대했다. 군에 있는 동안에도 공부를 해 보려고 애썼으나 영어 단어 하나 암기를 못하고 3년을 표류하고 말았다.

4. 열풍에 돛을 달고 – 그리고 좌초

71년 제대를 하고 집에 오니 집안 사정은 상당히 호전되어 있었다. 4월부터 옛날의 ‘마옥당’을 수리하여 공부를 시작, 5월 2일에 3급 1차에 합격, 그리고 사법시험으로 전환. 처음 법률 책을 대하니 다소 흥분되기도 했으나 과연 이 어려운 것을 해낼 수 있을지 더럭 겁부터 났다. 그러나 소설을 읽듯이 마구 읽었다. 생각보다 쉬웠다. 겉만 슬슬 핥으니 그럴 수밖에……. 전 과목을 무질서하게 읽었다. 행정법과 상법이 좀 어려운 듯했다. 민법을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소송법은 전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실체법을 전혀 모르니 그럴 수밖에……. 4개월에 걸쳐 오리무중을 헤매면서 전 과목 3회독을 마쳤다.

「고시계」를 66년도부터 소급해서 샀다. 그러나 합격기 말고는 아무 것도 읽을 수 없었다. 그 동안의 체험과「고시계」합격기에서 읽은 것을 정리하여 얻은 것은 책을 읽는 순서 정도였다. 이리하여 민법을 먼저 읽고 상법과 행정법에 들어가고 실체법을 먼저 읽고 소송법에 들어 간다는 순서를 정하여 9월부터 시작했다. 새로 읽으니 과거의 3회독은 간 곳 없고 전혀 새로 읽는 기분이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다시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10월에 14회 공고가 났다. 외면하려 했으나 자꾸만 들떴고 마침내는 고시 사상 최단기 기록을 목표로 하여 무작정 덤볐다. 문제 집을 샀다. 1차의 합격은 나의 이러한 만용을 더욱 부채질했다. 이젠 문제집마저도 내 나름대로 밑줄을 긋고 그 부분만 골라 읽었다. 8개월 정도의 준비로 2차 시험에 응했다.

시험장에서 고향의 중학교 후배를 만났다. 사법시험 준비는 나보다 훨씬 선배였다. 나의 공부 기간을 듣고는 “전 과목을 한 번 다 보지도 못했겠네요?” 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자신이 무시당하는 기분에 저으기 분개하면서 우습게 받아 넘겼다. “두고 보라지……. ” 정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을 모르는 막강한 뱃심이었다. 이런 뱃심으로 시험에 응했다. 기막히게 더 잘 썼다. 내가 아는 건 다 썼고 또 아는 건 그 뿐이었으며 집에 와서 책을 대조해 보지도 않았으니, 기막히게 잘 썼다고 생각할 수밖에……. 점수는 50점 얼마였다.

뒤에 읽어보니 문제집에 밑줄을 그어 두었던 부분이 모두 엉터리였다. 다른 색깔로 새로 밑줄을 고쳐야 할 형편이었다. 이러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응시자를 젖히고(?) 과락 없이 300명 선 안에 들어갔으니 다음에는 틀림없을 거라고 또 한 번 낙관했다.

그러나 발표 후 5-6개월을 이유 없이 허송했다. 제대 후 공부도 시작하기 전부터 마을 처녀에게 마음을 뺏기기 시작하여 상대방의 단호한 거부에도 불구하고 열을 올리게 되고 8개월에 걸쳐 집요하게 추근거려 1차 시험 직전에야 겨우 처녀의 마음을 함락시키고는 안도했는데, 이제 그녀가 결혼 적령을 넘었다는 사실과 고시와 연애는 양립할 수 없다는 중론 사이에서 그녀와 나는 고민의 연쇄반응을 일으켰고, 또 이틀이 멀다 하고 만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애정의 열도에 비례하여 공부를 위한 시간에의 집착이 강하여 심리적 갈등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9월에야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장유암이라는 절에 들어갔다. 국사의 추가로 부담이 늘었지만 시험이 연기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 ‘수석 합격’이라는 표어를 내걸고 열심히 공부를 했다.

73년 1월에는 예년의 시험 대신에 그녀와 결혼했고 5월에는 아들도 낳았으나 나는 여전히 절에서 계속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 그런데…… 글쎄 정말 이럴 수가! 그렇게 끔찍이도 나를 아껴주시며 자신의 못 다한 소망을 나에게 걸어 꿈을 키워 주시던 큰형님이 5월 14일 교통사고로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리셨다. 한 줌 잿가루로 화해 버린 형님의 유해를 고향에 묻고 절로 올라 올 때는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이제부터 전혀 공부도 되지 않았다. 단지 타성에 의하여 책장을 넘기고 있는 동안에도 마음은 삶과 죽음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생각들과 고시와 출세에 대한 회의로 가득 차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결론은 하나, 형님의 꿈 그리고 나의 꿈, 어떻든 고시는 필연적이었다. 15회 시험까지 남은 기간은 40여일 뿐, 차츰 초조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 책을 읽기만 하면 가슴이 울렁거리며 답답해지는 알지 못할 병에 걸리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시험을 한 달 앞두고 보따리를 싸 들고 집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아직 산고가 풀리지 않아 부자유스러운 아내와 핏덩이 신걸이, 자식을 잃은 부모님의 비탄……. 공부가 될 리 없으니 병은 점점 더해지고……. 수석 합격이라는 화려한 표어와는 달리 응시조차 포기하고 싶은 것을 부모님의 시선이 두려워 마지 못해 상경하였으나, 시험 첫 날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목구멍에 무엇이 치밀어 올라 우유와 계란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그래도 기를 쓰고 책을 볼라치면 몸에서 식은 땀이 배어 나왔다.

「고시계」의 통계란에 따르면 결과는 90위 정도, 정리만 잘하면…… 하는 자신을 얻은 셈이었다.

5. 새로운 좌표 – 직업 의식

그러나 좀 쉬어야 했다. 책을 잡기만 하면 예의 증세가 나를 괴롭혔다. 고시를 그만둘까도 싶었다. 학교 성적이 우수했다는 사실이 반드시 고시를 해야 할 필연적 이유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도 되었고,법을 공부하면서 차츰 정의의 이념을 배워 가는 동안 ‘고시=권력=출세’라는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등식이 우스운 것임을 느끼게 될 무렵 형님의 뜻 아닌 타계는 예시 과목의 철학 개론을 공부하면서부터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해 오던 삶의 의미를 보다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맹목적 출세주의와 ‘ 그 수단으로서의 고시’라는 과거의 생각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았다.

그러나 상고를 졸업한지 너무 오래되어 새로운 진로를 찾기는 어렵고 하여 고시를 그만두지는 못했다. 다만 이제는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배수의 진은 거두어 버리고, 하나의 직업인이 자기의 생각에 충실히 종사하듯이 고시 공부도 평범한 생활의 일부로 생각하려 했다. ‘수석 합격’이라는 표어 대신에 ‘천직 =소명’이라 써붙이고, 숙소를 마옥당에서 집으로 철수하여 직장에 출퇴근하는 기분으로 낮에는 마옥당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여유가 있을 때만 공부하기로 하였다.

아기가 울면 달래기도 하고 기저귀도 갈아 채우고 밤이 늦도록 아내와 정담을 나누며 잠을 덜 자면 이튿날 낮잠을 잤다. 그러나 가슴과 목의 증세는 쉽게 낫질 않아 16회 시험까지는 부담 없이 쉬었다. 16회 시험도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응시한 정도였고 성적은 15회보다 내려 130위 안팎으로 생각되었다. 17회 준비 1년간은 정말 순조로웠다. 절에 있을 때 만들었던 독서대의 실용 신안 특허 출원 관계로 9-10월에 조금 쉰 것 말고는 가금 아내와의 대판으로 선풍기 목이 부러지거나 문짝이 떨어져 나가는 활극이 연출되기도 하는 가운데에도 예전과 같이 재미있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10월 하순부터는 풀었던 긴장을 바짝 조여 이때부터는 아내가 들 건너 마옥당까지 점심을 날라다 주었고 잠은 여전히 집에서 잤으나 신걸이가 잠들기 전에는 우리 방에 못 오게 하고 책을 보았다.

그러나 17회 때에도 역시 정리가 다 되지는 않았다. 단지 다른 어느 때보다 정리 기간이 착실했으니 훨씬 낫겠지……. 집을 나서면서 아내에게 “신문 기자들이 수석 합격자 인터뷰하러 올 테니 당신도 피력할 소감 한 마디 준비해 두지 그래.”하고 허풍을 쳤다. 건강은 좋았고 시험은 순조로웠다. 집에 와서도 역시 출발 전의 호언장담을 되풀이했다. 3월 27일 아침 먹고는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없어 진작부터 낮잠에 들어갔다. 꿈결에 “무현아! 무현아!”하는 친구의 떨리는 목소리, 그도 뒷말을 잇지 못했고 더 들을 필요도 없이 아내는 내 무릎에 엎드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형님! 지하에서도 신문을 보십니까? 아버지 어머니도 형님 생각에 자꾸만 우십니다.”

6. 더하고 싶은 이야기

공부 방법, 책의 선택, 공부 장소, 독서 방법 등에 관한 문제는 각각 제 것이겠지요. 그래도 일반론이 있다면 이미 많은 선배님들의 합격기가 말한 것과 나도 같습니다.

그래서 제 특이한 입장에 관한 것과 또 제가 따로 하고 싶은 얘기만 골라서 제 경험을 예로 들어 쓰렵니다. 다만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얘기하는 것은 객관성을 잃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마는, 어느 정도 참고는 되리라 믿습니다.

1) 독학에 대하여

응시자 중에 4년제는 물론 초급대학에도 안 간 사람들만을 독학도로 계산해도 그 수는 600명을 넘는데, 이 수는 서울대 출신 응시자 800명에 거의 육박하는 수임에도 합격자 수는 수년만에 하나씩 나올 뿐으로 도저히 비교가 안된다. 이런 점을 보면 대학교에는 꼭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로 경제 사정과 연령이 문제인 것 같으나, 경제 문제라면 요즘 일부 사립 대학에서 고시반을 편성하여 학비는 물론 숙식 일체까지 밀어 준다고 하니 오히려 독학보다 경제적으로 부담이 가벼울 것이다. 연령 문제도 생각 나름이 아닐까?

2) 그래도 구태여 독학을 하겠다면 독학도들의 고시 합격률이 지극히 저조한데 반하여 대학 출신자 중에는 법대 출신이 아니고도 고시에 합격하는 사람이 많고 17회에는 수석 합격자가 공대 출신이다. 이러한 결과는 여러 가지 원인으로 연유하는 것이겠으나 나는 이 점을 대학에서 얻게 되는 일반 교양 과정의 지식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과거 예비 고시에 합격한 후에도 법서를 살 형편이 못되어 군에 입대하기까지 1년간을 예시 과목의 책을 그대로 읽었고 이것이 제대 후 법서를 공부할 때 상당한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이런 점에서 학력 제한이 철폐된 오늘의 제도보다 과거의 예비 시험 제도가 보다 합리적인 제도가 아닐까?

흔히 독학도들은 소위 공부 방법이나 수험 정보, 고시 기술론, 고시 분위기 등에 생소함을 걱정하게 되나 그런 점은 고시 잡지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수험 기간 중 많은 사람들과 많은 얘기들을 나누어 보았으나, 수험 잡지의 합격기나 좌담회, 통계 기타 안내편에 나오는 이상의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다.

3) 병역 문제

군에서 공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러나 어차피 가야 한다면 일찍 갔다 오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현역 복무 중 가는 세월을 한없이 초조하게 생각했으나, 마치고 나니 부담이 없어 좋았고 또 졸병 생활 자체가 하나의 수업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수험 과정 중에 필요했던 끈기 있는 자세는 군에서 몸에 익힌 바 큰 것이었다.

4) 연애와 결혼

처음 8개월에 걸친 일방적 구애 작전은 시간과 정력의 손실이 너무 컸다. 그러나 일단 결혼한 후에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아내의 세심한 배려는 말할 것도 없고 점심을 가지고 올 때면 언제나 따라오는 개구장이 신걸이의 재롱은 식사시간을 즐겁게 해 주었다. 붉은 낙조를 바라보며 집에 건너오면 또 반겨 주는 신걸이의 고사리 손이 하루의 긴장과 피로를 깨끗이 잊게 해 주어, 나는 침체기를 몰랐고 따로 휴식이나 기분 전환 거리가 필요 없었다.

애타는 애인들 있으면 결혼들 합시다.

5) 건강

절대적 조건임은 두말 할 것 없고 다만 공부로 오는 정신적 육체적 피로보다 초조, 불안 등의 심리적 파탄에서 오는 손실이 훨씬 더 심각하고 장기적인 것이다. ‘고시 아니면 파멸’이라는 생각이나 출세에의 지나친 집착, ‘최단기’ ‘수석합격’ 등의 욕심은 사람을 견딜 수 없이 초조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하나의 직업인이 성실하게 직장에 임하듯 수험 생활에 임했더니 장기에 걸쳐 장소를 옮기지도 않고 공백 기간도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바꾸고도 곧잘 대성하더라. 일정시까지 안되면 직업을 바꾸면 그만이다. 여하튼 다소간의 긴장은 필요하겠으나 지나친 긴장 불안 초조는 금물이다.

또 며칠을 허송했다 하여 갑자기 초조해지고 그를 보상하겠다고 급하게 열을 올리고 무리를 하는 것은 잇달아서 또다시 며칠의 침체와 시간의 낭비를 강요하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 지나간 시간은 아무리 아까워도 깨끗이 잊는 것이 좋다. 장기전에서의 며칠의 허송은 그리 문제되 지 않는다. 나는 최종 정리 기간에도 부부 관계는 억지로 금욕하지는 않았다.

여하튼 나는 이런 느슨한 자세로 공부했다. 그러나 결코 남보다 노력을 덜하지는 않았다. 보통 10시간은 넘게 공부했고 일단 책상에 앉으면 무서운 집중력을 구사했다. 머리가 혼란해지고 잡념이 생길 때에는 책을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안정이 되었다. 그러나 일단 책을 떠나면 고시는 깨끗이 잊었다. 이런 느슨하면서도 투철한 자세는 확고한 직업관에서 왔다고 생각되지만, 또 합격에의 신념으로 보완될 때 더욱 안정적이라 생각된다.
*** 출처 – http://gongsin.com/zbxe/11684697 ***

늦은 밤 홍익대학교 분향소
5월 25일 밤 11시 30분경
헌화하고 향을 피우는 두 여학생.

노대통령님께

우리는, 잃어버린 뒤에야 알게 되는 것이 더 많은 듯 합니다.

Wolfram Alpha가 사용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5월 19, 2009

일반 사용자들의 needs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Wolfram Alpha를 어떻게 사용해야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Google의 내부관계자들은 Wolfram Alpha에 대해 굉장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일반인들에게 자주 쓸법한 검색수준과는 상이한 것 같네요.

Wolfram Alpha에 대해 google을 뛰어넘을 기업이 탄생할런지에 대해 언론은 대대적인 관심을 보였었습니다. 또한 Wolfram Alpha가 출시된 이후에 user들이 많은 검색 활동을 펼치리라 예상했구요. 그러나 사용자들은 반응은 이러합니다.

1. google과는 확연히 다르다!

“Google can relax” 이미 이 동영상의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Wolfram Aplha에 대한 사용자들의 인식은 대체로 “google과는 다르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사용자들은 google의 검색방식을 더 선호하고 있구요.

2. Wikipedia가 낫다!

다른 사용자는 Wikipedia와 Wolfram Alpha를 비교하면서,
전문적인 지식 제공을 표방하고 있는 Wolfram이 전문적인 문서 제공면에서도 Wikipedia가 더 낫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물론 Wolfram Alpha 사용자가 낮은 만큼 조사 표본이 작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대체로 이러한 반응들이 더 우세한 것 같습니다.

electronic cigarette

5월 19, 2009

Oh, my god! 흡연애호가들의 건강을 살뜰히 챙겨줄 제품으로 은단 외에 또 다른 제품이 있네요. 비흡연자인 저로써는 다소 난감한 제품입니다.

www.gamucci.com

전자 담배 쯤이라 생각할 수 있는 이 제품은 나온지는 꽤 되었습니다. 2008년도에 출시가 되었다고 하니까요.

gamucci

실제 담배랑 비슷하게 생긴 이 제품은 가상으로 담배를 핀 것 같이 느끼게 해주는데요. 이름이 “Gamucci”네요, 일본어 같죠? 그런데 이 회사는 런던에 기반을 둔 회사라고 하네요. 개발자의 이름은 homepage에 나와있지 않네요.

Gamucci 의 Benefits입니다.

1. Non-Flammable
2. be smoked everywhere
일반적으로 흡연이 금지된 구역 내에서도 법적으로 사용가능합니다.
3. cool sophisticated design
4. different flavours
담배맛이 다르답니다. Tobacco, Chocolate, Coffee, Apple, Cherry, Mint, 심지어 zero nicotine도 있다네요.
5. rechargeable배터리로 충전하여 쓰는 만큼 담배값 들일이 없겠네요.
6. cheaper than traditional cigarettes
드디어 담배도 껌과 사탕 외에도 대체재가 등장하게 된 건가요!
7. Healthier Option
가장 중점을 두고 설명해야 하는 부분 같습니다.
tobacco와 tar까지 들어있지 않다네요! 전통적인 담배가 4000여개가 넘는 화확성분중 25개의 발암물질이 들어있는 것과는 달리 GAmucci는 어떤 발암물질도 들어있지 않다고 하네요. 단지 담배처럼 보일 뿐이랍니다.

(Gamucci 홈페이지에서 Benefit을 설명하는 페이지 부분이 돋보였습니다. 마치 타로카드에 그려진 그림들을 클릭하면서 알 수 없는 마법의 세계, 혹은 매력적인 세계 속으로 초대하는 듯 했습니다.) Gamucci Benefit 설명 페이지

Gamucci 광고 동영상입니다. 물론 TV 방영은 어렵겠죠.
제품군이 워낙. 특별하니

이제 아버님께 은단이나 니코틴 패치 대신에 이 선물 어떨까요.
그리고 아무리 건강에 나쁘지는 않다고는 하지만, 오래도록 피우시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담배 = 나빠!”라는 고정관념의 골이 깊어진 듯 합니다.

Google의 “Coupon feeds”

5월 19, 2009

교수님 블로그에 따르면 현 경제침체 상황이 요인이 되어, Google에서 Coupon의 검색사용 빈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참고할 포스트변지석 교수님의 “Google 검색어로 ‘Coupon’의 사용 빈도가 증가했다”

불황이 끝나기 전에 얼른 feed back을 받고 google Rabs에서 나와 “Google Coupon Feeds”란 이름으로 제대로된 기능을 구현하였으면 좋겠다.
물론 불황이 끝나도 ‘Coupon’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지는 않겠지만, 부디 소비 진작(振作)에 도움이 되어 이 길고 긴 불황을 빨리 끝내버렸으면 한다.

Google Coupon Feeds란 google search 결과에서 coupon을 listing 해주는 service를 말한다.

google coupon examples

Google Rabs에서의 Google Coupon Feeds 설명

Motion Sensing Elevator

5월 18, 2009

동작감지센서가 부착된 동작감지 엘리베이터**

**단지 저의 생각일 뿐입니다. 저런 elevator가 있음 좋겠다는 생각.

Elevator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으로는
여러 대의 elecator를 설치하고선 짝수층, 홀수층만 운행하는 것이다.

우리학교 홍문관 R동 정문쪽과 반대편에 설치된 Elevator의 경우.
총 세 가지의 Elevator유형이 있다.
홀수층만 운행, 짝수층만 운행, 전층 운행.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홀수층이나 짝수층을 이용할 때,
자신이 이용하는 층, 홀수나 짝수를 눌러놓고 전층버튼을 누르거나
바쁜 경우에는 홀수, 짝수, 전층을 모두 누른다.
(뭐든 빨리오는 걸 타려는 심산이다.)

그러면 엘리베이터 밖이나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먼저 온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난 사람이 눌러놓고 간 버튼 때문에
아무도 없는 빈 층에 문이 공허하게, 열렸다가 닫힌다.
(아! 그 짧은 순간, 얼마나 허탈하고 뻘쭘한지;; )
동작감지센서가 부착된 엘리베이터(Motion Sensing Elevator -임의로 제가 명명한 단어임을 밝혀둡니다.)라면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이 있을 경우에만 문이 열리게 된다!

그러면 사용자의 시간도 절약해주고 에너지도 줄이게 되고.
편리함이 이만저만 아닐 것 같은데.

특히나 최근 엘리베이터가 위쪽으로 움직이는 ‘구동운전’을 할 때는 에너지가 소모되고, 사람을 태우지 않았거나 아래쪽으로 움직이는 ‘회생운전’을 할 때는 에너지가 생기는 “전지재활용 엘레베이터”도 있다던데. 한푼이라도 에너지가 아쉬운데!

그저 자동문처럼 동작센서감지기를 붙여서
사람있을 때, 열리고! 사람없을 때, 열리지 않는!
그런 smart한 Motion detection Elevator를 꿈꿔봅니다.

누구나 생각해봄직한데….

-R동 Elevator 타면서 느낀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