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5월, 2014

다음을 기약할 줄 알아야 한다.

5월 16, 2014

미금역으로 와준 님으로 인해 한껏 고양된 기분으로 막걸이와 파전을 먹으러 가게에 들어섰다. 막 한모금 삼켰는데, 파인애플을 든 젊은 청년이 다가왔다. 돈은 안 받을테니 한 번만 맛보라고 하였다. 맛만 보라며.

맛만 보고 사지 않으면, 괜시리 판매자는 서운한 마음을, 소비자는 미안한 마음이 들테니 정중히 거절하며 괜찮다고 했다. (마트 시식코너도 마찬가지이다. 괜히 맛본 것이 미안해져서 구매하는 경우가 있어 아예 시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파인애플 장수는 완강했다. 자리를 뜨지 않고 우리 테이블에 계속하여 머무르고 있었다. 이야기 나눌 시간도 부족하였던 터, 그리고 기분이 좋은 상태.
“진짜 맛만 보면 되죠?” 이러면서 냉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분도 나도 기분이 상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그 분은 곧 파인애플이 얼마인지 물어봐달라고 한다. 역시 맛만 보라는 그 말은 판매단계에서의 1단계였던 모양이다. 파인애플 장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파인애플이 얼마인지만 물어봐 달라고 했다.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구매의사가 없는 고객에게 점점 감정호소를 하기 시작했다. 개시도 못 했다며, 오천원이니 하나 사달라고 한다.
다음에 사겠다고 하였다. 나는 정말 다음에 살 의사가 있었다. 그러나 파인애플 장수는 “다음은 없다.”고 말했다. 물론 그날의 매출이 중요하겠지만, 뜨내기 고객이 대상이 아니라면 다음을 기약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고객이 완강하다면 다음을 기약할 줄 알아야 한다.
구매 의사가 없는 고객에게 감정적 호소로 이뤄낸 판매에 지속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바로 그 자리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하지 말자. 다음을 기약할 줄 아는, 기다림의 미학을 가진 사람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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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通)

5월 11, 2014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 – 작가 : 데이빗 그레이그, 연출 : 이상우

제목만큼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연극이다. 현대인의 소통의 부재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주제는 무거웠지만,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를 적절히 오가는 그의 연극은 시종일관 나를 유쾌하게 했다.
우리는 끊임 없이 상대와 소통하길 원하지만. 현대인들은 어쩌면 서로 대화하는 법을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 나또한 그렇고. 대화가 아닌 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소통하는 비비안과 베르나르를 보며, 언어가 아닌 마음이 통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상대방의 입이 아닌 마음을 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면 귀 귀울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한다. 말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은 세상. 욕망. 알아달라는 욕망 같은 것. 나를 보아달라고 하는 외침. 작가는 욕망이란 것은 비로소 모든 것을 가졌을 때 사라진다고 했다. 법정 스님은 욕망에 대해 무소유라고 한다. 우리 마음은 이미 식민지가 되어버린 걸까. 아메리카로 대변되는 거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마음 속 깊이 파고든 것일까. 작가는 우리 마음은 이미 아메리카의 식민지라고 했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영상미. 런던과 파리, 오슬로를 오고가는 작가의 무한 상상력. 주인공과 주인공을 잇는 이야기의 구성. 너무도 다른 캐릭터들로 인간의 양면성까지 표현한 작가와 연출가에게 그저 감탄 또 감탄한 연극이다.
마음이 통했으면 한다. 말할 것이다. “그래, 당신. 우리 얘기 하자”고 말이다.

‘왜’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시오?

5월 11, 2014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키잔차키스

 

“애매한 것도, 비물질적 대상도 아니고 이름과 형태를 알았으니 싸움이 훨씬 쉬워진 셈”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처럼 행동하는 삶에 뛰어들 이유를 찾았다. 비록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수많은 초콜릿과 브라우니, 라떼 등등) .

나의 결심은 조르바로 인해 생겼다. 무언가 고민스럽고 쉽사리 결정내리지 못할 때, 조르바가 말했다.

“‘왜’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시오?” 

그 한 마디에 계산 없이 오로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우리는 삶에서 꽤나 복잡하고 그럴 듯한 답변을 찾길 원한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온갖 논리와 궤변들로 가득 차있다. 그처럼, 좀더 단순한 답을 찾아보자. 

나쁜 짓들이 때로는 자유의지를 실현하기 위함인 것을… 때문에 비난하거나 힐난하기가 어렵다. 그의 자유행동이나 의지에 영향 받지 말며, 사물을 직시해야 한다. 본질을 봐야 하지 않은가! 수많은 ‘왜’라는 질문 앞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