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Uncategorized’ Category

다른 카드 있으세요?

6월 12, 2014

급여계좌 외에 용돈계좌를 별도로 만들어, 이를 연결한 용돈카드(체크카드)를 쓰고 있다. 종종 용돈을 초과해서 사용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그 때마다 계산대 점원의 반응이 흥미롭다.

1) “잔액 없으신데요” : 통상적이다. 카드단말기에서 출력되는 메시지 ‘잔액부족’을 그대로 이야기한다.

2) “다른 카드 없으세요?” : 가장 서비스 마인드가 투철할 것 같은 백화점 매장이나 패밀리레스토랑에서도 1)의 반응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우연히 찾게된 브런치 카페에서 점원은 잔액부족 대신 다른 카드가 있는지 먼저 물었다.

2)의 화법. 고객은 그 차이를 알아본다.

안정을 원한다.

6월 3, 2014

불안 – 알랭드 보통

 

 1) 사랑의 결핍 : 사랑은 세상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존중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관심 -> 부(축적) -> 사랑이라는 메카니즘을 지닌다. 관심에서 비롯된, 사회적 태도가 우리의 의미를 결정하게 된다. (사회적 약자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태도가 그들에게 “의미”가 된다.)

상대방의 태도가 나의 의미를 결정지었기 때문에 초라해진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특히나 “너는 이런 것도 이해 못 하는구나!”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상대방에 대해 본인 자신만 이해받고자함이다.

2) 속물근성 : “속물은 독립적인 판단을 할 능력이 없는데다가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의견을 갈망한다.” 자신만의 기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 나만의 기준이 없어, 속물근성 즉 소위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에 나를 맞추다보니 소중한 것을 잃은 경험이 있다. 또한 ‘남들이 ~ 카더라’에 휘둘린 타인의 속물근성을 관찰하는 것은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이로써 나는 어리석게도 불안의 정점에 서있었던 것이다. 

Going to a town

6월 3, 2014

Tom at the farm – Xavier Dolan-Tadros
Going to a town – Rufus Wainwright

 

1) ‘Going to a town’이라는 음악을 위해 존재하는 영화임이 분명하다. 탁월한 선택이다.

2) 인간 본성이 뒤틀린 인물 속 ‘탐’은 성적 소수자이지만, 오히려 그 이름이 상징하는 바와 같이 평범함이나 보편성을 갖는다. 감독은 사실, 덤덤한 시선으로 동성애자인 주인공을 조명함으로써 망가져버린 인간본성(프랑시스와 그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이 가진 폭력, 거짓과 은폐. 우리는 그것에 스톡홀롬 신드롬을 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3)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탐이 무의식적으로 농장의 집으로 -문 앞 현관에- 들어서려다가, 멈칫하면서 뒷걸음질 치는 장면이다. 유일하게 그가 비정상적인 상황을 인지하며, 드디어 행동으로 이끌어낸 장면이다. (일상생활에서 비정상적/ 옳지않음을 경험하고도 물러나거나 눈 감아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의 뒷모습, 특히 어깨 언저리에 잡힌 앵글의 망설임이 곧, 나의 망설임처럼 느껴졌다.

4) “실재한다” 비정상적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던 탐의 이유이다. 농장으로 대변되는 거짓이 만들어낸 세상은 마치 새로움이나 생명력(잉태한 송아지)으로 가득 차있는 것 같다. 우리는 실재와 허구를 극명하게 구별할 수 있을까.

5) 미국국기의 잠바를 입은 프랑시스(폭력성과 이중적인 태도-자국민(어머니)에 대한 애착-를 지닌 인물)와 Going to a town의 “I’m so tired of America” 가사가 묘하게 매칭되는 위트 있는 영화

다음을 기약할 줄 알아야 한다.

5월 16, 2014

미금역으로 와준 님으로 인해 한껏 고양된 기분으로 막걸이와 파전을 먹으러 가게에 들어섰다. 막 한모금 삼켰는데, 파인애플을 든 젊은 청년이 다가왔다. 돈은 안 받을테니 한 번만 맛보라고 하였다. 맛만 보라며.

맛만 보고 사지 않으면, 괜시리 판매자는 서운한 마음을, 소비자는 미안한 마음이 들테니 정중히 거절하며 괜찮다고 했다. (마트 시식코너도 마찬가지이다. 괜히 맛본 것이 미안해져서 구매하는 경우가 있어 아예 시식하지 않는다.)

하지만 파인애플 장수는 완강했다. 자리를 뜨지 않고 우리 테이블에 계속하여 머무르고 있었다. 이야기 나눌 시간도 부족하였던 터, 그리고 기분이 좋은 상태.
“진짜 맛만 보면 되죠?” 이러면서 냉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 분도 나도 기분이 상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그 분은 곧 파인애플이 얼마인지 물어봐달라고 한다. 역시 맛만 보라는 그 말은 판매단계에서의 1단계였던 모양이다. 파인애플 장수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있었다. 파인애플이 얼마인지만 물어봐 달라고 했다. 슬슬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구매의사가 없는 고객에게 점점 감정호소를 하기 시작했다. 개시도 못 했다며, 오천원이니 하나 사달라고 한다.
다음에 사겠다고 하였다. 나는 정말 다음에 살 의사가 있었다. 그러나 파인애플 장수는 “다음은 없다.”고 말했다. 물론 그날의 매출이 중요하겠지만, 뜨내기 고객이 대상이 아니라면 다음을 기약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고객이 완강하다면 다음을 기약할 줄 알아야 한다.
구매 의사가 없는 고객에게 감정적 호소로 이뤄낸 판매에 지속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바로 그 자리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기대하지 말자. 다음을 기약할 줄 아는, 기다림의 미학을 가진 사람이 되자.

통(通)

5월 11, 2014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 – 작가 : 데이빗 그레이그, 연출 : 이상우

제목만큼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연극이다. 현대인의 소통의 부재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 주제는 무거웠지만, 진지함과 가벼움 사이를 적절히 오가는 그의 연극은 시종일관 나를 유쾌하게 했다.
우리는 끊임 없이 상대와 소통하길 원하지만. 현대인들은 어쩌면 서로 대화하는 법을 잃어버렸는지 모르겠다. 나또한 그렇고. 대화가 아닌 말을 내뱉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비로소 진정으로 소통하는 비비안과 베르나르를 보며, 언어가 아닌 마음이 통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상대방의 입이 아닌 마음을 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면 귀 귀울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가 하고 싶어진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고 한다. 말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 같은 세상. 욕망. 알아달라는 욕망 같은 것. 나를 보아달라고 하는 외침. 작가는 욕망이란 것은 비로소 모든 것을 가졌을 때 사라진다고 했다. 법정 스님은 욕망에 대해 무소유라고 한다. 우리 마음은 이미 식민지가 되어버린 걸까. 아메리카로 대변되는 거대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마음 속 깊이 파고든 것일까. 작가는 우리 마음은 이미 아메리카의 식민지라고 했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영상미. 런던과 파리, 오슬로를 오고가는 작가의 무한 상상력. 주인공과 주인공을 잇는 이야기의 구성. 너무도 다른 캐릭터들로 인간의 양면성까지 표현한 작가와 연출가에게 그저 감탄 또 감탄한 연극이다.
마음이 통했으면 한다. 말할 것이다. “그래, 당신. 우리 얘기 하자”고 말이다.

‘왜’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시오?

5월 11, 2014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키잔차키스

 

“애매한 것도, 비물질적 대상도 아니고 이름과 형태를 알았으니 싸움이 훨씬 쉬워진 셈”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처럼 행동하는 삶에 뛰어들 이유를 찾았다. 비록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수많은 초콜릿과 브라우니, 라떼 등등) .

나의 결심은 조르바로 인해 생겼다. 무언가 고민스럽고 쉽사리 결정내리지 못할 때, 조르바가 말했다.

“‘왜’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시오?” 

그 한 마디에 계산 없이 오로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했다. 우리는 삶에서 꽤나 복잡하고 그럴 듯한 답변을 찾길 원한다. 그래서인지 세상은 온갖 논리와 궤변들로 가득 차있다. 그처럼, 좀더 단순한 답을 찾아보자. 

나쁜 짓들이 때로는 자유의지를 실현하기 위함인 것을… 때문에 비난하거나 힐난하기가 어렵다. 그의 자유행동이나 의지에 영향 받지 말며, 사물을 직시해야 한다. 본질을 봐야 하지 않은가! 수많은 ‘왜’라는 질문 앞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라는 명령

3월 8, 2014

1.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며 열심히 벤처기업을 양산해내던 사회가 이제는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하라”고 한다. 최근 경영진은 또다른 열정 슬로건을 찾은 듯 하다.
2. 몇 년전 읽었던 책이 다시 생각났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라는 책이다. 열정으로 대두되는 노동의 미학화에 관해 역설하고 있다.
3. 어느덧 열정은 제도화되었고 이른바 유사도덕으로까지의 성공을 거두었단다. 자기계발은 나 자신이 노동자임을 잊게 하는 블라인드이면서, 능동적인 노동을 부추기는 교묘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국가와 기업이 아닌 개인이 생산성을 향상시켜야 한다(자기계발)는 발상은 성공과 실패의 책임을 모두 개인에게 전가시키는 훌륭한 전략이라고 한다.
4. 내가 좋아하서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니, 내가 더 감내해야 하는 것이 맞단다. 그러므로 어느덧 노동자는 야근과 주말출근의 동반자여, 친구가 된다.
5. 하지만 고무적인 것은 노동자들이 똑똑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일도 출근하는 딸에게 – 유인경’와 같이 근래 출판되는 책을 보면, 열정만이 답이 아니라 인생을 살라고 이야기한다.
6. 열정은 개인의 삶을 희생하라 강요하지만, 내 딸에게는 야근이나 사표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준다.
7. 시간이 지나, 노동자가 될 우리의 딸과 아들에게 열정보다는 인생을 선물해주고 싶은 작은 소망이 생겼다.

* 문득 주말에 자기계발하다가 든 생각

커피 타는 너. 너에게는 그 분들이 없구나.

3월 7, 2014

정신 없이 바빴던 금요일 오후. 새로운 DB정책과 더불어 변경한 프로그램에서는 에러가 나고… 주간업무보고서 작성으로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던 중이었다. 나도 모르게 돌린 시선에서 조그마한 쟁반에서 커피를 나르는 고운 손길을 보았다. 그래 너.
마치 드라마의 한장면처럼, 나는 과거를 회상했다.
2010년, 갓 입행해 지점에 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협력업체 사장님이나 임직원에게 “차 한잔 드릴까요?”였다.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차를 타곤 했는데, 나중에 사장님께 들은 얘기로는 커피를 못 먹는데도 내가 열심히 타온 거라 안 먹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자 할 수 있는 업무가 많아졌다. 자연히 내가 타는 커피의 수도 줄어들었는데 가끔 고객들이 와서 커피를 찾는 때가 있었다.
막역한 사이의 고객 이하 사장님이 오셔서 이제는 차도 안주네라며 푸념하시면, 팀장님께서는 “쟤 커피 타러 들어온 애 아니야, 몇 백대 1을 뚫고 온 인재야! 커피는 내가 더 맛있게 타지! 자, 기다려봐!!” 라며 손수 커피를 타서 대접하시고는 했다. 지점장님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여직원을 생각하셔서 커피 대신 음료수를 구비하여 대접하셨다. 부득이하게 커피를 찾는 사장님이 오시면, 커피잔 내려놓기 무섭게 “김 계장, 고마워~”라며 눈 맞춰주시곤 했다. 그리고 나중에 오신 여자 과장님은 과거에는 수도 없이 타셨을텐데 대신 타주시거나 함께 치워주시곤 하셨고, 꼭 수고했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더욱 생각난다. 이 좋은 분들을 뒤로 하고, 내 꿈 찾아 떠났지만… 그 분들은 축복해주시고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던 분들.
지금은 퇴직하신 정강균 지점장님. 이제 지점장님 되시는 류승희 부지점장님. 조은숙 차장님.
믹스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보면서 난 날마다 그 분들을 생각할 것이다.

연극 홍당무

2월 10, 2014

홍당무 – 쥘 르나르
(산울림소극장, 연출 : 민새롬)

고전소설을 세련미 넘치는 현대적 표현으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과연 복잡미묘한 이 작품을 어떻게 연출하였을지가 궁금했다.
(뻔한 연극들은 연기자가 홍당무 분장을 하고 나온다.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에 포커스를 맞춘다. 중심 주제는 가족애라고 한다.)
연출가 ‘민새롬’은 진짜 주인공이 누구인지 헷갈리게 하는 원작의 묘미를 잘 살렸으며, 이 소설의 특징인 삽화조차 놓치지 않았다. 좁은 무대 공간을 활용하게 한 빔스크린이 지극히 현대적이지만 고전적이다. 참신하고 기발했다.
2인극으로 설정한 것도 극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으며, 쥘 르나르의 따뜻한 해학을 잊지도 않았다. 눈 오는 겨울밤의 완벽한 연극이었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극으로 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포커스는 가족이 아니다. 그 뒤틀려진 가족 속의 ‘나’였던 것이다. 그의 외침이 오래도록 귓가에 맴돈다. “왜 나에게 그러지 않았어요?”

체취는 어떤 수렴진화일까

2월 9, 2014

사람마다 고유의 체취를 갖고 있다고 한다. 최근 급격하게 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후각은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내 감정이 한순간 바뀐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라 애써 위로해본다.

1) 생물학적 관점에서 체취란 자신을 지켜주는 방어막으로도 활용된다. 영역표시 또는 독성을 내뿜어 상대를 위협하기도 한다.
또한 세균들에게 약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의 반증이라고도 한다. 생활습관(목욕빈도, 혹은 살고 있는 환경) 등에 비추어보았을 때 말이다.
2)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체취는 청결함의 척도이다. 프랑스에서는 깨끗함의 기준을 ‘향기가 나느냐’에 둔다고 한다. 혹자는 그런 이유로 만들어진 화학적인 향수가 우리의 면역체계를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는데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3) 코, 즉 후각이 진화론적 관점에서 큰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내가 인내할 수 없는 향기를 누군가는 달콤하게 맡을 수도 있다. 향기라는 것도 결국 절대적이지 않은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체취는 생존본능이면서 종족번식의 본능의 발현이다. 둘다 양립해야하는 수렴진화인 것이다. (생존본능이 더 우선이었나보다. 아름다운 겨울왕국이 결국 체취로 결론나버려 슬프기 그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