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룸메이트와 함께 명동 중앙시네마 시사회에 갔었다. 한국판 영화 제목은 ‘사랑을 부르는, 파리’
우리는 가끔 국내에 들어온 영화의 제목 번역이 잘 못 되어 망친 사례에 대해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참고 블로그 3 Minutes Romance의 외국번역 잘못하면 하면 독
사랑을 부르는 파리는 아마 독이된 사례가 아닐까 한다.
우리가 익숙하지 않다고 여기는 해외 영화의 제목에 ‘사랑’이란 단어를 넣어 관객들에게 친숙하게 느끼게 하려는 모양이다. 다른 블로거는 ‘사랑을 부르는, 파리’에서 쉼표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게 뭐가 되었던 간에 이 영화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집어 넣음으로 인해서, 이 영화의 제목은 영화 전반에 걸쳐 쓸데없는 상상을 하게 만든 마케팅 관계자의 실수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포스터 뒷 편에 About Movie를 보면 이에 대해 더 강한 의심이 든다. “중년에 찾아온 열병 같은 사랑에 방황하는 건축가 롤랭” 롤랭이라니!! 롤랭은 역사학자이자 대학 교수이다. 등장인물까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니. 이 영화 마케팅에는 실수가 가득하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이 영화를 단순히 연인들의 사랑을 담은 것으로 생각하고 볼 많은 관객들에게 경고가 필요한 것 같다.
이 영화를 단순히 사랑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영화 마케팅 관계자들도 이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밖에 얘기할 수 없다. 뭐 사랑의 관점도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겠지만, 결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러한 사랑의 종류는 아닌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파리에 관한 영화이다. 낭만의 도시로 통하는 파리, 누구나 이 곳에서 사랑을 꿈꾸게 된다. 파리는 모든 연인이 꿈꾸는 곳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모두의 이상이 아닌 현실의 파리를 그린 영화이다. 그리고 프랑스의 문화를 그대로 잘 녹아내려 만든 수작이라고 평하고 싶다. (비록 내가 영화평론가는 아니지만 말이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파리에 사는 다양한 인격의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
스치듯 지나치는 풍경들과 감독의 상상력. 곳곳에 녹아든 블랙 코메디.
(사실 프랑스 영화의 블랙 코메디를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몇 안된다. 프랑스 영화는 언어유희에 의한 유머가 많이 때문이다. 번역이 이를 뒷받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국인도 공감할 수 있는 블랙 코메디적 요소가 잘 배치 되어 있다.)
특히 롤랭의 동생이 3D로 꿈을 꾸는 장면은 프랑스 영화만의 독특함과 신선함, 즐거움을 선사한다. 유성영화의 시대로 오면서 사운드의 힘을 인식한 프랑스 영화 답게 영화음악 또한 근사하다.
누군가는 누벨바그에 의하여 프랑스 영화를 망쳤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벨바그에 의해 제7의 예술로써 프랑스 영화만의 독특한 입지를 가지게 되었다.
‘사랑을 부르는, 파리’는 프랑스와 프랑스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뒤섞여 사는 소수 민족들의 이야기까지 갖추고 있다. 볼거리에 치중해 눈을 아프게까지 하는, 지나친 화려함의 영화에 식상했다면, 지금까지의 다른 차원의 영화 감상을 하고 싶다면 나는 이 영화를 추천한다.